| 1953년 8월 20일, 첫 번째 레드스톤 미사일 발사가 플로리다 주의 케이프커내버럴 에서 실시되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폰 브라운이 V-2를 개발하기위해 선정했던 페네뮌데 섬과 케이프커내버럴은 둘 다 바다를 낀 곳에 시험장이 건설되었고, 고립되어 있고,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서 아주 흡사하였다. 그러나 첫번째 시험비행은 유도조종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70여 미터를 비행한 후 추락하였다. 원격 측정 및 결과보고 시스템인 텔레메트리를 이용하여 원인을 분석했는데, 그에 따르면 일단 로켓은 발사된 후 어느 특정 시점까지는 완벽한 비행을 하였다. 텔레메트리 데이터는 보통 가속도, 속도, 엔진 연소실 온도 및 압력, 펌프 회전수, 연료통 압력 등등 로켓의 상태를 알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들을 측정하여 무선으로 지상에 보내는데, 완벽한 비행이 어느 시점 부터 깨졌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었다. 의심할 만한 원인들을 지상시험을 통해 하나하나 조사해봤으나 적절한 이유를 찾기 힘들었고, 따라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원인을 선정해 바로 그 원인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때 한 엔지니어가 폰 브라운을 찾아와 만나보길 원했다. 그는 발사 전 점검 과정에서 어떤 접점이 느슨한 것 같아 조였는데, 그 과정에서 스크류드라이버가 접점에 접촉되었고, 이때 스파크가 튀었다고 했다. 다시 점검해보니 스파크의 영향이 전혀 없는 것 같아 그냥 지나갔다는 것이다. 폰 브라운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바로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폰 브라운은 아무것도 고치지 말라고 명령했고, 그 엔지니어에게 샴페인 한 병을 보내주었다. 정직은 항상 보답을 받는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바로 폰 브라운의 지도력 중의 하나인 것이다. 부하들이 문책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있는 사실 그대로 말하게 하는 분위기가 기술력과 창조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레드스톤 미사일은 발사 성공률이 높아졌고, 드디어 발사지역이 표적지역보다 덜 위험해졌다. 사실 다른 미사일과 비교할 때 레드스톤은 개발과정에서도 발사성공률이 아주 높은 미사일로 정평이 났다. 38기를 발사한 중에서 35기가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다. |
『정규수, <<로켓, 꿈을 쏘다>>, (서울: 갤리온, 2010), p.153-154.』
몇몇 오타가 있어 임의로 수정했다.
인기종목이 아니기에 1쇄뿐인거 같긴 한데;;;;
V-2 개발후 독일의 패망과 폰 브라운의 미국행후 얘기다.
미국측에 항복하고 반 권유 반 강제로 넘어갔다랄까... 미국측에서 로켓 기술이 필요해서 데려가기도 했고...
레드스톤이란 로켓은 사거리 300km급 로켓개발 프로젝트로 시작한걸로
노스아메리칸 사의 자회사 로켓다인(Rocketdyne Division)에서 생산하는 추력 34톤의 A-6엔진을 사용했고
자세제어에는 V-2와 같은 흑연제 제트베인, 러더를 사용했다.
V-2와 차이점은 페이로드가 2.8톤, CEP(공산오차)가 300미터로 V-2에 비해 20배라고 한다.
연료는 에틸알콜 75% 물 25%에 액체산소를 산화제로 사용.
애초 독일에서 로켓 개발할때도 폰 브라운은 군사용 미사일 같은 걸 개발하는게 아닌 순수한 로켓을 원했다고 한다. 이후 나오는
『
Across the Space Frontier (1952) -우주의 경계를 넘어서
The Conquest of the Moon (1953) -달 정복
The Exploration of Mars (1956) -화성 탐사
』
이 책들에서 꽤나 현실적인 예측(당시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소리지만)이 이어진다.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도 대단한 사람이지만(궤도엘리베이터라던지, 로켓방정식이라던지...) 폰 브라운도 꽤나 매니악한 사람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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